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주 공방전/평가 (문단 편집) === 형주소유와 북벌을 누가 더 잘 했는가의 문제 === 촉빠들과 오빠들의 논쟁거리 중 하나로 형주를 가지고 있었던 두 나라 중 누가 더 형주를 가지고, 나아가 북벌자체를 누가 더 잘했는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나라팬들의 입장은 이렇다. '관우의 북벌 역시 양번공략을 실패했고 오나라는 육손, 제갈근, 주연등이 형주에서 열심히 북벌에 매진하였지만 결국 실패한것은 매한가지다. 누가 가지고 있었던지 형주 북벌은 둘 다 실패했으며 나아가 양주를 가지고 있던 오나라나 익주를 가지고 있던 촉한 역시 각각 양주와 익주를 이용한 북벌엔 실패했으니 북벌을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오나라가 북벌횟수가 많으니 삼국의 형세로 보면 오나라가 촉나라보다 더 강했다.' 이에 대한 촉나라팬들의 입장은 이렇다. '우선 유비부터 북벌로 한중을 빼앗았으며 관우의 북벌은 단 한번의 호기를 잡아 7군 수몰을 이용해 대승을 거두었고 적어도 손권의 뒤치기 전까지는 양양을 굳건히 포위하는 등 그 기세를 잃고 있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형주 문제를 논하면서 촉한의 북벌 자체를 폄하하는데 제갈량은 무도, 음평을 얻기라도 했고 강유 역시 단곡의 패배 이전까지 양주를 거의 손에 넣을 뻔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따져서 촉이나 오나 북벌을 실패한건 사실이나 이쪽도 할말은 있다.' 하지만 손권의 뒤치기 전까지 양양을 굳건히 포위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사 삼국지 서황전과 무제기를 보면 손권이 남군을 기습 공격한 것은 관우가 서황에게 패하면서 병력 부족으로 양번의 포위를 풀고 내려온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http://rexhistoria.net/history_sam/2567|그런데 삼국지 조엄전을 보면 서황이 번성을 포위를 해체한 이후에도 관우는 여전히 양양을 포위했다.]] 조엄전에서는 관우의 양양 포위가 해체한 것은 여몽의 습격 이후다. 정사 자체가 위나라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과 조엄전의 기록을 합쳐서 고려하면 서황전과 무제기와 기록은 ''' 과장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형주 공방전, version=1568, paragraph=6)] [[분류:한나라/전투]][[분류:삼국시대(중국)/전투]][[분류:유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